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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걷기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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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금 무서웠다;;;


사촌 동생이랑 갔었던 청계천.
시간도 어중간하고, 날도 흐려 썩 예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조금 우울하고 쓸쓸하고 허전한 분위기도 꽤나 괜찮았다.
한적하게 걸어다닐 수 있어서 청계천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주위에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함께 갈 사람이 없다는 슬픈 현실이~ㅠㅠ

언제부터 내가 걷는 걸 좋아했을까.
꽤나 어렸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 춘해병원 쪽 어딘가에서 친구들과 공짜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서면이 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 친구들과 서면까지 걸어가지고 제안했었고,
걷다가 지친 친구들에게 욕을 먹으며;; 근처에서 버스를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 남자친구도 걷는 것을 무진장 좋아라 했었다.
새벽에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내려서 무작정 걷다가 한참 뒤 주위를 둘러보니 이태원이었다고.
처음에는 참 싫었는데.
학교에서도 맨날 걸어다니는데, 데이트라도 조금 편안하게 하고 싶었다.
게다가 데이트할 때는 예쁘게 보이려고 구두를 신으니,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팠다.
내가 맨날 발아프다고 징징거리니까 그애는 내가 구두만 신으면 발아플까봐 지레 겁을 먹었다.
그래서 그 앤 내가 구두 신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구두 신지 말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발이 아파도 꾹 참고 걸어다녔다.
그래서 지금은 7센티나 되는 굽을 신고 뜀박질도 잘 한다.ㅋ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걷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버스나 지하철보다 걷는 게 더 좋아졌다.
공강 시간 내도록 학교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괜히 갈 필요도 없는 법구관의 사물함도 한 번 들려 본다(뭐,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홈플러스까지 걸어간다.(올때는 짐이 많아 잘 못걸어오지만..)
종로 거리를 좋아한다.(하지만 길은 잘 모른다ㅡ_ㅡ)

혼자 걷는 건 그것만의 매력이 있다.
내가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에는 길과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길이 나를 인도하면, 나는 길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간다.
그러면서 길이 제공하는 수 많은 자극들을 주저없이 받아들인다.
내 안에 숨은 온갖 생각들이 뻗어나와, 나는 나무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둘이 걷는 것 또한 멋진 일이다.
손을 꼬옥 붙잡고, 또는 팔장을 끼고.
기분 좋은 접촉이다.
옆 사람의 체온에 내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느긋한 마음으로 조곤조곤 사소한 이야기들도 나누고, 농담도 주고받고, 시냇물같은 웃음도 터뜨리고.
고개를 돌리면 좀처럼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옆모습이 보인다.
색다른 자극이다.

셋 이상 걷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걸음이 느린 편이라 항상 무리에서 뒤쳐진다.
길을 잘 잃는 편이라 일행을 놓친 적도 꽤 여러번이다.
나란히 걸어가면서 길을 막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걷는 게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싫어하더라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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