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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Farther Lands]

홍콩 표류기-Day.1

출국날 아침은 항상 바쁩니다.
분명히 어젯밤에 짐을 챙기고 잤음에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직 챙길 게 더 남았습니다.
체크리스트까지 보며 꼼꼼히 짐을 챙기지만, 분명 홍콩 도착해 보면 빠뜨린게 분명 하나 이상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ㅎㅎ

제가 예약한 항공은 케세이퍼시픽의 홍콩 경유 자카르타행 비행기입니다.
맨날맨날 대한항공/아시아나/가루다만 타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비행기를 타 보네요.
심장이 두근두근두근두근!!

이틀동안 가지 말라며 칭얼거리던 슝이는 어젯밤부터 칭얼거림이 줄었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 칭얼거림을 다시 시작하여 제가 공항행 버스를 타기 전까지 칭얼거리네요.
"가다가 확 다리나 부러져라!!"
"나 없는 동안 바람피다 걸리면 레테의 강을 볼 줄 알아!!"
슝이와 저는 작별 인사로 서로에게 정답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습니다.
눈물이 핑도네요, 정말로.아싸.
해방인 것입니다.


공항에 도착하고 발권을 했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탈 게이트는 처음 가보는 탑승동입니다.
셔틀을 타고 가야 해서 40분 전에는 입국심사를 받으라고 하네요.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입국 심사를 받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면세점에 정신이 팔렸겠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저는 지금 홍콩에 가는 것이니까요.

셔틀을 타고 탑승동에 도착하니 여기도 이것저것 갖춰져 있네요.
면세품 인도장도 있는데 신라 면세점이라고만 적혀 있어요.
설마 신라 면세점에서 산 물건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케세이퍼시픽은 B열이 없네요.
좌석 번호가 AC-DEF로 되어 있어요.
왜그럴까요.
그리고 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항공보다 좌석이 좁은 듯.
옆 사람이 화장실 가려고 일어섰는데 나가는 걸 무지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좌석 머리 부분 양 옆에 머리 받침대가 있어서 잠자기는 편하더군요.
식사를 주던데 저는 버거킹 와퍼를 먹은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패스했어요.
기내식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별로 맛있어 보이지는 않네요.
그냥 아이폰으로 음악 틀어놓고 내리 잤어요.
조금 깊게 잠들어버려 헤드뱅잉을 했는데 누가 보지는 않았겠죠, 설마.

 

홍콩 공항은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밀려오는 것이 인도네시아를 생각나게 하네요.
대충 분위기를 보니 인도네시아 공항보다 조금 더 작고 아기자기한 듯.
호텔 셔틀버스 부스를 찾아가 호텔 바우쳐를 보여주니 큼지막한 스티커에 제 이름을 써서 가방에 붙이고, 작은 주황색 스티커를 옷에 붙이라고 주네요.
재미있는 시스템입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주황색 옷을 입은 아저씨가 오더니 뚱땅거리는 영어로 뭐라뭐라 외칩니다.
"메뜨로빨꾸 까우룽"이란 말이 귀에 확 들어오네요.
저도 벌떡 일어나 줄을 섰습니다.
사람들이 모이자 "빨로미"라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축지법을 쓰는지 제가 한 걸음 옮길 때 세 걸음 정도 앞서 갑니다.
제 캐리어는 위에 귀신이라도 앉았는지 점점 무거워집니다.
버스 타는 것, 힘이 드네요.

쫄랑쫄랑 아저씨를 따라 무사히 버스에 탑승했습니다만,
여전히 긴장이 됩니다.
혹시 이상한 곳에 내려 미아가 될 까봐(자주 그러거든요) 정차하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제가 묵을 Metropark Kowloon 호텔이 마지막 정류장이군요.
무사히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습니다.
잔돈이 없어서 멀뚱히 쳐다보는 벨보이를 현관에 두고 문을 닫았어요.
(홍콩은 팁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호텔을 나올 때 약 20HKD 정도를 베개 위에 두세요.)

들어온 지 5분만에 이미 어질러진 방.


호텔 부킹은 아이폰 HotelBooker 어플로 했어요.
도시 이름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호텔들의 정보를 볼 수 있고, 즉석에서 부킹도 할 수 있답니다.
이메일로 바우쳐를 뽑아 가기만 하면 되니 편하더군요.


대충 짐을 풀고 호텔방 구석구석을 뒤지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습니다.
뭔가를 먹으러 나가야지요.
Metropark Kowloon 호텔 근처에 홍콩 번화가 중 하나인 몽콕 역이 있다고 하니
일단 무작정 나가봅니다.

혹시나 길을 잃을까봐 쭈-욱 직진만 하면서 횡단보도를 세 개쯤 건너자 고가도로가 나오네요.
여긴 아닌가봅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보이네요.
왠지 저기로 가면 음식점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과감하게 턴을 합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네요.
높은 건물들과 번쩍이는 간판이 홍콩의 밤거리에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여긴 무슨 별천지인가요!!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몽콕인가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마땅한 음식점이 보이질 않아요.
주전부리를 파는 노점상들은 많이 보입니다.
과일 주스나 버블티와 같은 음료수들과 이상한 튀김들이 보이네요.


상당히 낯설게 생겼을 뿐더러 냄새가 꽤나 고약합니다.
말로만 듣던 초두부일까요?
추측은 해 보지만 검증할 용기는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걸 먹으면 저의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망가뜨릴 것 같습니다.
그냥 계속 가던 길을 갑니다.

배가 점점 아파옵니다.
생각해보니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은 이후로 약 7시간 동안 주스 한 잔 마신 게 전부로군요.
게다가 길을 잃은 것 같네요.
도대체 제가 어디 쯤에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갑자기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눈물이 핑 돕니다.
'아 쉬밤. 지난 번 유럽에서도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내가 미쳤다고 또 여행을 쳐 기어나왔구나.'
후회가 막심합니다.

더욱 서글픈 것은 곳곳에 보이는 음식점 광고판입니다.
뭔가 맛있는 음식이 그려져 있으나 위치가 한자로 적혀 있네요.
절대 읽을 수가 없어요.
광고판을 뜯어먹고 싶습니다.

시침은 9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1시간 반 가량을 걸었으나 아직도 식당을 찾지 못했어요.
괜찮은 식당은 줄이 뭣처럼 길고,
골목 구석에 있는 식당은 왠지 먹지 못할 음식이 나올 것 같아 차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룸서비스를 시킬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 울기 직전!!
적당히 사람이 북적이는 음식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림도 들어있고 메뉴도 영어로 적혀있네요!!
얼른 들어가 메뉴에 있는 그림 중 제일 친근하게 생긴 녀석과 아이스 레몬 티를 시켰습니다.

오, 주여ㅠㅠ 감사합니다ㅠㅠ

닭고기 육수로 만든 칼국수로군요.
사실, 양도 적고 짜고 반죽은 질깁니다.
그런데...
맛있어요!!!ㅠㅠ진짜로ㅠㅠ
엄마아빠언니동생에게 전화해서 홍콩에서 밥 먹었다고 자랑하고 싶어요ㅠㅠ



그리고 호텔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었습니다.
길을 잃어 몽콕 역 근처를 무한대 모양으로 뺑뺑 돌다가
랭함 플레이스로 가서 지도 펴들고 손짓발짓해서 겨우 찾아왔네요.

내일이 오는 게 두렵습니다.ㄷㄷㄷ



이 동네를 3시간 반 동안 뺑뺑 돌았단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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