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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Books & Movies]

[영화] 퀵



원래 볼 생각 없었다.
특히 요즘은 액션 영화가 별로 땡기지 않는 데다가, 한국 액션 영화에 워낙 실망을 해서 안보려고 했으나
자주 가는 청량리 롯데시네마에서 '고녀석 맛나겠다'가 하루 딱 한 번, 그것도 저녁 시간대에 상영되어서
그냥 이민기를 보기며 눈을 쉬기로 했다.



'퀵서비스'라는 영화의 소재가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에서만 존재하는 직업.
심지어 사람도 배달이 가능하지 않던가.

영화의 줄거리를 한 마디로 말하면, 한때 폭주를 뛰었던 퀵서비스맨이 재수없게 우연히 폭파범에게 낚여
여기저기 폭탄을 배달하러 다닌다는 이야기다.

약간 <스피드>와 <트랜스포터>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저 문장만 보고 위의 명작들과 비슷한 퀄리티를 기대한다면 큰일날 거다.)

캐스팅은 놀라우리만치 화려하다.
해운대에서 못 다 이룬 사랑을 이루려는 듯 이민기와 강예원이 주인공을 맡았고,
최근 떠오르는 명품조연인 고창석과 한때 롤코 <불친절한 병철씨> 코너를 맡았던 김병철,
어느 영화에서나 권위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주진모, 맛깔나는 사투리의 김인권,
악역으로는 마이더스의 미친 존재감 윤제문 기타 등등등...
영화를 보는 내내 속으로 '어, 저 사람도 나오네'를 연발케 하는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제작진이 한 편의 영화를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애마는 BMW S1000 RR로 추정되는 녀석인데,

사실 퀵서비스맨 오토바이가 BMW라는 것이 더 놀랍다만


이걸 여러 번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모자라, 에쿠스를 던져버리고 아우디를 폭파시킨다.
(기타등등 자동차들이 아작나고 터지는 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시원하게 질러버린다.)
해운대 제작진이 만들어서 그런지 액션 하나는 끝내준다.

여기까지 들으면 마치 트랜스포머 뒤를 잇는 희대의 액션 블록버스터가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스토리가 개판이면 쌩 지랄을 해도 영화는 재미없다는 걸 이 영화 하나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일단, 두 주인공은 발연기의 완결편을 보여주는 것 같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2009년 <블러드>에서 톱스타 전지현이 보여주는 연기와 레베루가 비슷할 듯)

해운대 제작진이라 두 연기자들과 친분이 있어 다시 캐스팅한 것 같은데,
해운대에서 이민기와 강예원(특히 강예원)이 얼마나 어설펐는지를 잊은 듯 했다.

너무 어설퍼 손발이 오그라들던 바로 그 씬. 이 영화에선 내내 그런다.


남주와 여주가 이러니 조연들이 아무리 맛깔나게 살리려 해도 영화는 힘에 부치는데,
더 비극적인 것은 내용 전개나 설정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스토리 전개에 '복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복선을 잘 깔수록 관객은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고, 더욱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가 요즘 액션 영화를 안본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복선의 부재' 때문이다.
최근 많은 액션 영화들이 스케일만 믿고 내용에 소홀한 탓에 복선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있다 하더라도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엉성하다.
(지난 번 리뷰에서 내가 <트랜스포머 3>에 썩 높지 않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이러한 요즘의 액션 영화의 폐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또, 영화의 볼거리만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억지를 부리고 있다.
남주와 여주가 탄 오토바이를 경찰이 추격하는 씬에서
갑자기 건들지도 않은 가스 배달 트럭의 화물칸 잠금장치가 풀리는 바람에 가스통이 고속도로를 굴러다니며 이 차 저 차에 내리꽂히는 장면은 통쾌하다기보다 거북스러웠다.
또한, 어두운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코믹한 요소를 심어 놓았는데, 이것 역시 과하다.
영화가 어두우면 잘 안보니까 관객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런 짓을 했을 것이다.
<해운대>에서도 코믹함이 종종 영화몰입에 방해가 되어서 내 마음 속 평점을 깎아먹었는데,
<퀵>에서는 이것이 극대화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발대본 앞에서 고창석, 김인문, 주진모, 윤제문의 명품연기는 추풍낙엽이다.

초반 30분 정도는 나름 즐겁게 영화를 본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웃는 횟수보다 한숨쉬는 횟수가 많아지더라.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서비스 영상으로 스턴트맨들이 얼마나 몸을 사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보여주던데, 그걸 보며 드는 생각은

'저런 돈 들여가며, 저 고생 해 가며 만든 영화가 고작 이거 밖에 안되나?'

하는 물음 뿐이었다.

흥행만을 염두에 둔 요즘의 액션 영화의 단점만을 모아놓은 것 같은 영화였다.


평점: ★☆
(영상만 보면 별 4개 이상을 받을 영화지만, 스토리가 나머지를 다 깎아먹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