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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추억 되새김질 쯤은 괜찮겠지?

경주의 명물 황남빵.

원래 을 싫어한다.
뭐..싫어한다고 안먹는건 아니지만,
일단 안먹을 수 있는 상황이면 되도록 안먹는 편.
그런데 이 빵,
얇은 빵 안에 팥이 그득하게 들어있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동수가 경주에 내려갈 때면 항상 사달라고 졸랐다.
항상 함께 못있어서 미안해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항상 뭐든지간에 마구 주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설거지가 귀찮아서 밥을 잘 안먹는 것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경주에 내려가면 무언가 갖다주려고 했다.
그 성의를 거절하기가 싫어서,
이번에도 황남빵을 부탁했다.
사달라고 하면 어찌나 기뻐하는지...
이번에도 나를 위해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왔다.
헤어졌어도 친구니까 받았다.


잊고 있었다.
빨리 안먹으면 상하니까 냉동실에 넣어놨는데,
어제 우연히 배가 고파 냉장고를 뒤지다가
저게 거기 있는 걸 보았다.
알 수 없이 미묘한 기분.

더 이상 단 걸 먹고싶지 않았는데,
저 빵을 보는 순간,
'한 개만 먹어 볼까?'

얼어서 딱딱한 표면을 살짝 앞니로 갉아 맛을 본다.
달다.
그 애의 목소리 같다.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먹는다.
달달한 팥이 온 입천장에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한 번만 더 먹자.


그렇게 꾸역꾸역 두 개를 먹으니
달아서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쓰며 빵을 도로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뭐야, 우리 관계 같잖아.
끊임없이 달기만 해.
달아서 질려버렸다.
그래서 그만 먹기로 결심했다.
배가 불렀다.


나는 을 싫어하는데.
또 황남빵 하나만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사랑이 끝나도 그리움은 남는가보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빈이야~'하는 애칭도,
애써 공들인 화장을 다 먹어버리는 뽀뽀도,
자장가 대신 불러주던 전람회의 '취중진담'과 KCM의 '흑백사진'
그립다, 그리워.
그럴거면 왜 헤어졌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필요에 의해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건,
그를 속이고,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것이기에.
그를 상대로 거래를 하고 싶지 않다.

가끔 이런 내가 소름끼치도록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
장사꾼일까, 나쁜년일까.


황남빵은,,,,,,

이제 그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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