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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달리기보다 걸음마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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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첫 걸음마.


오늘 패션디자인 및 실습 시간에, 내가 얼마나 그림을 못그리는지 깨달았다.

처음 그려본 스타일화.

사실, 이건 그림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초적이고 조잡한 것이었다.

단지 8.5등신의 인체비례에 맞게 A4용지에 사람의 몸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동작이 들어가지 않은,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을.

눈 코 입도 필요없고, 화려한 옷도 필요 없었다.

단지 조건은 내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사람의 몸을 그리는 것이다.

처음 낸 일러스트.

요즘 모델 추세에 맞추어 가슴도 엉덩이도 없는 얄쌍한 몸매를 가진 인체였다.

나름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칠판에 걸어놓으니, 머리는 크고, 어깨는 좁고, 힙은 비뚤어져 있다.

그런 것들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던 두 번째 일러스트는 최악이었다.

여전히 큰 얼굴에, 그래도 좁은 어깨. 비정상적으로 큰 가슴과 어이없이 휜 다리.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그림이었다.

내 그림이 제일 미워보였다.

너무 부끄러워 울고 싶었다.

당장 앞으로 달려나가 내 그림을 뜯어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추했다.

나는 어쩌자고 당치도 않은 프라이드를 품고 살아 온 것일까.




역시 기본이 없었다.

그건 누구 탓도 아니었다. 내 탓이었다.

항상 화려한 겉치레로 흔들리는 기본기를 숨겨왔을 뿐.

나는 눈속임의 달인인 야바위꾼과도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자.

기초 선긋기부터 다시 시작하자.


돌이켜보니, 항상 나는 뭐든지 빨리 끝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행운 덕에 내가 여태껏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의 네잎클로버라도 일어버리는 날엔,

지금 상태로는 끝장이다.

나는 꽤나 얍삽한 인생을 살아왔었나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조차도 속여왔었던 것이다.

용서치 않아.

나에게 가혹해지기로 했다.



걸음마는 자신에게 가혹해야 한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근육을 놀려야 한다.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대신 걸어줄 사람은 없다.

균형 잡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그래서 더 어렵다.

나는 지금 그걸 해야 한다.

좀 더 단단해져야 한다.








사족)플톡 개설했어요^^
http://playtalk.net/merrysunshine
...하지만 어떻게 쓰는줄 모른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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