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싫어

비오는 아침, 나와 내가. 밤새 찾아 온 빗방울은 실로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파충류의 피가 흐르는 소녀의 아침이 버겁다. 눈꺼풀마저 얼어붙은 아침. 손과 발에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피가 결국 머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지, 기본적인 신진대사를 제외한 인간으로서의 고차원적인 사고의 마비. 그린버그라든지, 마네라든지, 아방가르드라든지. 수 많은 단어들에 내 달팽이관을 통과하면서 의미는 탈락하고, 자음과 모음의 산산히 조각나 뒤섞여버린다. 힘이드는군. 생크림 가득 얹은 진한 코코아 한 잔이면 조금은 행복할텐데.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건 단 돈 밸원자리 자판기 설탕커피뿐. 늦잠을 잘 여유가 단 하루만 있었으면... ----------------------------------------------------------------.. 더보기
비가와. 싫어한다, 비. 오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볼 일을 보다가 저녁 약속까지 잠깐 시간이 떠서 집에 들어왔다. 어제 밤 잠을 설친 탓일까, 쏟아지는 졸음에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깐 눈을 붙였다. 뻐꾹뻐꾹. 문자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뭔넘의날씨가이런고 세기말같잖아] 다시 눈을 감았다. 후두두둑 후두둑 후둑 후두두두둑. 비가 오는 구나. 왈칵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만들다 실패한 초콜릿과 함께 꿀꺽 삼킨다. 옷 갈아입어야 하나. 대충 코트만 갈아입고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선다. 마침 MP3에서는 故 유니의 습관이 흘러 나온다. 역시 비는 싫어.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청소나 하다가 커피나 한 잔 타 마셔야 하는데. 갑자기 집 안에서 진동하는 초콜릿 향기가 그리워졌다. 어둡고 싸늘한 골목길. 담장 밖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