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얼마 전, 오랫동안 교제해 온 여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 이후 그 남자는 잠도 잘 잘 수가 없고, 식욕도 떨어져 무려 5킬로그램이나 몸무게가 줄었다. 항상 무기력해 하던 일에도 지장이 생겨 그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A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는 거의 인간의 형체가 아니었다. 깊게 패인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작은 일에도 쉽게 우울해 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심리상담을 권해 주었으나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A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힘들어 정신과를 찾아가 보았으나, 의사는 신경안정제만을 처방해 줄 뿐이었단다. A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데 매우 회의적이었다.
B라는 남자는 며칠 전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결혼을 한 여동생 c가 갑자기 형제들에게 어렸을 때 B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졸지에 근친상간 파렴치범으로 몰린 B는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한 데다가, 하소연할 곳도 없어 속을 끓이고 있었다.
C는 자신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연년생 오빠인 B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B가 따지자, C는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내지는 중학교 1-2학년때 일이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어디서 그랬냐고 묻자, 친척들이 많이 있었던 명절이나 할아버지 생신때 즈음에, 작은 방에 단 둘이 있을 때 B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대답했다. 그랬다면 반항하는 소리가 나거나, 자신이 폭행을 했을텐데 어째서 그런 정황 증거는 없냐고 되묻자, 강간이 아니라 성추행이었다고 했다가 다시 호기심에 서로가 서로를 만졌다고 말을 번복했다. 그러면서 C는 자신이 불행한 이유는 모두 B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전교 1등이었던 B를 C는 매우 못마땅해 했고, 그래서인지 사춘기 시절에 C는 많은 방황을 겪었다고 한다. 몇 년 전 결혼을 한 후부터 C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종종 하곤 했는데, 친지들은 단순히 '맹랑한 거짓말'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몸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플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한 것 같다. 마음이 아파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고 '병원을 한 번 가 보세요'라고 말하면 당사자는 매우 기분이 나빠하며 '지금 누굴 미친놈으로 봅니까?'하고 되묻는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가면서, 마음의 병에 걸리면 왜 방치하는 걸까?
우선은 정신병원(또는 심리상담센터)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마음 병자=미친놈'이라는 어떤 도식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도식이 생긴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단일민족의 특성에 따른 병폐라고 진단한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력이 더 뛰어나다. 내가 살았던 인도네시아에서도 보면, 얼굴이 얽었거나 온 몸이 화상자국으로 뒤덮여 있는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또 그러한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보지 않는다. 다만 '저 사람은 원래 저런 것이겠거니'하고 넘어가는 것이다.이렇듯 다민족 국가에서는 눈 색이 달라도, 머리 색이 조금 달라도 큰 무리 없이 넘어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우리는 머리색도, 생김새도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에 일반 상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사람을 보면 그를 포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잘못된 곳을 찾아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 치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문제다. 앞에서 말한 A의 경우가 그렇다. 한국은 심리치료사보다 의사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큰 상담센터를 찾아가기 보다 작은 정신과를 찾는 쪽을 더 선호한다. 이것이 잘못된 이유는, 정신과와 상담센터는 근본적으로 치료에 대한 관점과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눈이 아플 때는 안과에, 뼈가 부러졌을 때는 정형외과에 가는 것처럼, 작은 병일때는 동네 개인병원을 가지만, 암과 같이 큰 병일 경우에는 대학병원을 가는 것처럼,마음이 아플 때에도 적절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 고민상담센터
우선 가장 간단한 상담센터이다. 청소년 고민상담센터와 같은 것이 이러한 역할을 할 것이다. 아주 가벼운, 말 그대로 그냥 속은 답답한데 터놓을 곳이 없을 때 찾는 곳. 그렇다고 이런 곳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병과 불은 초기진압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민상담센터를 통해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받는다면 병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해 주는 사람은 일정 기간의 트레이닝을 받은 준전문가이지만 심리 치료를 전공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큰 병에 대한 치료는 불가하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서 심리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심리치료/심리상담센터
전문가로부터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상담치료란 전문적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자격과 능력을 갖춘 전문가와 생각과 감정의 교류를 통하여 자신의 생활양식과 내면 역동을 탐색하면서, 스스로의 핵심감정을 알고,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내담자는 상담치료를 통하여 문제의 원인과 그것이 지속되어온 배경을 이해하게 되고, 해결을 위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며, 아울러 스스로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면서 보다 효율적이며 질적인 삶에 다가서게 된다(호연, http://www.hoyunclinic.co.kr/).
심리치료/상담센터는 고민상담센터보다 전문성과 상담의 질이 한층 높아진다. 고민 상담을 포함하여, 자신의 현재 심리적 위치를 알 수 있는 심리 검사와 우울증/사회불안/공포증/중독 등의 치료가 가능하다. - 정신과
위에서 다루는 우울증과 중독 등에서부터 생물학적인 원인에 크게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신분열 등을 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치료를 한다. 정신과에도 약물 처방을 주로 하는 병원과 약물 처방과 상담을 동시에 병행하는 병원이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보통 약 5분 간 문진을 한 후 신경안정제와 같은 약물 처방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 후자를 찾아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정신질환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의사 아래에 상담심리를 전공한 심리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보통 다양한 심리 검사를 통해 '이상(abnormal)'이라고 진단이 내려진 환자들을 다루는 곳으로, 마음의 병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과 의학적 접근이 병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SOS24시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이상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격리하고 치료하는 곳이 보통 이런 정신과이다. 심리 상담센터에서 고칠 수 없는 병(정신분열/자폐)등을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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