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또다른 통로, 나르시시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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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젊음을 영원히 간직한다는 의미로 누드사진을 찍어 간직하는 것이 크게 유행이 됐던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유행하면서 예전에는 개인 수첩에서나 적어놓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때로는 음악과 함께 한권의 화보집처럼 꾸미는 것이 젊은이들의 일상이 됐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 친구들과의 파티, 때로는 전문영역에서의 지식을 아주 멋지게 소개하고 있고, 그 가운데 자신의 감정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렇듯 자신의 모습에 몰입하는 한국사회 젊은이들의 모습은 마치 연못에 비친 자신과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과 인터넷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 것이다. ‘나는 소중하니까’로 대변되는 이러한 문화적 나르시시즘은 미니홈피나 블로그 열풍에 국한되지 않고, 성형이나 명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서점마다 넘쳐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신감을 강조하는 책들, TV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 ‘눈꽃’의 ‘김보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 등에도 반영되고 있다. 원래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용어는 정신질환에 이를 정도의 지나친 자아상(특히 외모)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며, “병적인(morbid) 자기사랑 또는 자기 감탄”으로 정의되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다. 하지만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자기중심 또는 자기 몰두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자기사랑이 병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심리학적인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기와 자신의 세계에 대한 흥분감, 정상적인 희망, 포부, 이상 등은 건강한 나르시시즘에 해당한다. 최근에 나타난 문화적 나르시시즘은 정신분석학적 의미와 일상적인 의미 사이에 있는 듯하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관심의 결여, 타인에 대한 무시, 정치적 활동에서 희생보다는 사적 관계에 집착하는 현상 등은 이를 잘 대변해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심리학적인 나르시시즘의 원인은 주로 유아기에 냉담하거나 불안정한 사랑을 주는 부모에 의한 양육으로 설명되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유아기에는 누구나 세상과 자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을 탐색하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다는 의미의 일차적 나르시시즘시기를 거친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세상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이 하고 싶지만, 신체적이거나 세상의 여러 제약들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일차적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는 불안정을 부모에게 받는 인정과 사랑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정이 부모의 냉담하거나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방식으로 인해 적절히 보살펴지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도 유아기와 같은 나르시시즘형태(이차적 나르시시즘)를 가지게 된다고 본다. 강(江)의 신 세피소스가 레이리오페를 강간해서 태어난 나르키소스는 레이리오페에게 세피소스에 대한 분노를 항상 생각나게 하는 존재이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나르키소스에 대한 공격적인 양육으로 이어져, 나르키소스가 감정적으로 자기 충족적인 상태가 되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원인은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서 사회의 핵가족과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유아기에 안정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지고, 이혼과 같이 가정 내에서의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을 어린 나이에 경험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심리적 요인은 사회적 요인과 함께 문화적 나르시시즘을 촉진함과 동시에 인터넷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욱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사회적 원인으로는 크게 변화된 인생주기와 개인관의 변화, 그것을 촉진하는 기술의 발달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변화된 인생주기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최근 영양 상태를 비롯한 양육환경이 좋아지면서 신체적 성숙이 빨라지고, 예전에 비해 사춘기가 빨라져 좀 더 이른 나이에 자기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반면, 교육기간이 길어지고, 결혼연령이 늦어지는 등의 개인의 사회적인 역할획득 시기가 늦어지면서 자신에 대해 탐색하고 실험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역할 속에 내가 아닌 자신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표현에 대한 욕구를 더욱 촉진시켰다. 더불어, 사회는 합리적 이성, 계몽, 교육, 집단이 중요시 되던 모더니즘사회에서 개성, 자율, 다양성과 대중성을 중요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사회로 이동하면서 개인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되었다. 즉,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데올로기가 해체되고, 대량생산시대에 수많은 생산품들이 쏟아지면서, 몇 개의 집단으로 구분될 수 없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변화하고, 점차 복잡해지는 사회에서는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시되고,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는 개성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더 표현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이 욕구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기를 세상에 노출시키는 것이 용이해져 실현가능해졌다. 특히 인터넷은 자신을 반영하는 것들을 아이콘화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독특함이 찬사받는 시대, 표현하지 않으면 좀처럼 드러날 수 없는 매스미디어 시대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의 등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적으로 타인보다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는 현상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이 와 같이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되는 문화적 나르시시즘 현상의 옳고 그름은 사회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는 보편적이고도 바람직한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한 나르시스트라면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이유미(심리학박사·발달심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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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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