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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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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예전에 나에게 핸드페인팅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 근 1년 여 만에 전화가 왔다.

핸드페인팅 체인 셀타(www.celta.co.kr)에서 디자이너 한 명이 결혼을 해서 공석이 생겼는데,

그 자리를 메꿀만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연락이 왔길래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단다.

물론 처음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밑에서 반페인팅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시작한다고 반드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셀타에서 교육을 시켜주기 때문에

돈을 벌면서 핸드페인팅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놓치기 아까운 너무 멋진 기회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렇게 되면 셀타라는 회사에 고용된 직원이 되기 때문에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걸 하게 되면 방학 중에 토플 학원도, 과외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토플과 과외는 어떻게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개강을 하게 되면 그만두어야 한다.

아니면 학교를 안다니던가.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사실 너무 하고싶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심리학보다는 그림이 더 좋다.

하지만 과연 내가 미술로 성공할 만한 재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 여기까지 와서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다.

휴학을 하고 그쪽 일을 한다고 해도 내가 거기서 기반을 잡으려면 최소 2년은 해야 할텐데,

안그래도 늦은 졸업을 2년이나 더 늦추기도 싫다.

물론 집에서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테고.

오늘 엄마에게 전화가 왔길래 넌지시 그 얘기를 꺼내어 보았다.

엄마도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오셨다.




어쩌면 나는 용기와 모험심 부족인지도 모른다.

거의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면, 나는 안전한 길 쪽으로 머리를 튼다.

내가 만나온 사람들 중에는 모험을 해 온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친한 선배 중 한명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을 왔다.

과에서 아는 사람 한 명은 일문과 96학번인데, 심리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졸업생 편입을 한 사람도 꽤 여럿 보았다.

친구 한 명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찍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내 사촌언니는 이제 대학교 2학년 올라간다.

그런 사람들은 좁고 긴 길을 꾸준히 따라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길이 무서운가보다.

대학교 2학년 까지는 꽤나 여유가 있었다.

빠른 생일 덕분에 따져보면 친구들보다 한 살 어렸기 때문에, 왠지 1년을 번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제 졸업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취직도 하고 시집 간다는 얘기도 간간히 듣다 보니,

왠지 내가 뒤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인생이 경쟁이 아니며, 1등보다 완주가 더 중요한 건 아는데,

그래도 기왕이면 순위권에 들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다.

그러다보니 넓고 짧은 길만 선호하게 되는 것인지도.



아, 조금 우울하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나중에 내 새끼 하고 싶은 거 있음 무조건 밀어줘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그 때가 되면 나는 울엄마보다 더 펄펄 날지도 모르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너같은 딸자식만 낳아라. 고생 좀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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