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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진득한 밤이다.

꼭대기층 빌라는 낮동안의 복사열을 아직까지 품고 있다. 무심한 에어컨은 나의 더위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돌아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햇빛을 반기며 널어 놓은 빨래는 끊임없이 습기를 뱉어낸다. 창문에 달라붙어 악을 쓰던 매미는 어느 새 사라지고 없다. 조용히 혼자  앉아 신경질적으로 마우스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무료한 여름 밤이다. TV 속 연예인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거린다. 그 소리가 거슬리지만 TV를 끌 용기는 나지 않는다. 저 소리마저 없으면 무거운 여름 공기에 질식할지도 모르니까. 잠시 컴퓨터를 끌까도 생각해 보지만, 그것 역시 두렵다. 세상과 단절되어 버리는 것 같아서.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실을 서성이다, 휴대폰을 집어들어 전화를 걸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쪼꼬렛 맛으로."

바람이라도 좀 쐬겠다며 달려온 그의 손에는 작은 악마가 들려 있다. 한 컵에  3,500원, 약 270kcal. 작년 이맘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단의 음식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니까. 난 지금 위로가 필요하니까.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심호흡을 하고 포장을 뜯는 손이 리추얼마냥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잠시 후 퇴폐적이기까지 한 단 맛이 나의 혀를 애무한다. 방탕한 창녀가 된 기분이 묘한 흥분감을 유발한다. 어떤 남자도 주지 못하는 야릇한 황홀경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손발 끝이 저릿저릿하다. 혀뿌리가 아리고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단 맛. 이것은 악마가 틀림없다!


 자동차의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흔드는 통에 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어느 새 아이스크림 컵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옆에 앉은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이스크림과 내 입술을 번갈아 쳐다본다.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며, 한 입만 줘 보라는 그의 입 속에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넣어준다. 여전히 그의 표정은 알쏭달쏭. 남자인 네가 여자들의 클라이막스를 알 수 있을까.

초콜릿 때문일까. 턱을 괸 그의 옆모습에서 태초의 아담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따라 그의 눈썹은 더 짙어 보이고, 그 아래에 움푹 들어간 눈빛은 밤에 더욱 반짝이는 야수의 그것과 비슷하다. 희미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는 어떤 향수보다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조심스레 묻는다.

"자고...갈거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