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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새벽의 통화.

가끔 아주 이른 새벽에,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던 경험이 모두에게 한번씩은 있겠지.
그런데 사실, 그 실례되는 시간에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될까.
그러려면 우선, 내가 전화를 걸 사람이 잠을 깨우는 내 전화에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또는 최소한의 추측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또는 내가 상대방의 불친절하고 볼멘 목소리를 감당해 낼 수 있는 뚝심이 있거나, 거기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정신상태에 있어야겠지.(이건 주로 취중이더라.)
그래서 나는 한번도 그런 전화를 해 본적이 없어.
그런데 가끔은 그런 전화를 받고 싶었어.
나는 다른 사람의 관심과 애정에 굶주린 아이라, 그 늦은 시간에 내 생각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맙더라구.

그런데 오늘 새벽에 그런 전화가 왔었어.
얼마 전에 다리 건너 알게 된 아는 오빠.
아직 두 번 밖에 만나보지 못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두 번 만나고 형성된 그 사람에 대한 스키마는 착한 사람, 여린 사람, 대단한 사람, 귀여운 사람, 슬픈 사람 아직도 낭만을 품고 있는 사람 정도일까.
그런데 그사람,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더라.
외로움.
아니, 어쩌면 그 사람 나보다 더 외로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는 조금 부러웠어.
왜냐하면, 비록 술김에 그랬지만 외롭다고, 너무 외롭다고 한탄했거든.
외롭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어 말했어.
사람 앞에서.
나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누군가가 '외롭냐?'고 물으면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외롭지요.' 하고 끝내는게 다였던 것 같아.
나는 용기박약아거든.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그래도 같은 부류끼리의 교감같은게 있는 모양이야.
새벽에 온 전화를 받았을 때, 너무 꿀처럼 달콤한 잠에 빠져 있던 차라 짜증이 났었는데, 그 사람이라는 걸 알고나니 하나도 싫지가 않더라.
그 사람 목소리, 말투.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음절 하나 하나에서 아릿함이 전해져.
그래서 솔직히 듣고 있으면 나까지 아파서 힘이 드는데, 그래도 싫지가 않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 내가 뭐라고 충고나 조언을 할 위치가 아니기때문에 그냥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싫지가 않아.

그런데 그 사람 전화 끊으며 마지막 말에 그랬어.
난 괜찮아요. 잘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이 덜 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그게 다르게 들렸어.
난 괜찮지 않아요. 외롭고, 슬프고, 아파요. 도와주세요.
그사람이 가진 상처, 얼핏 보기에도 너무 심각해서 감히 내가 건들지조차 못하지만, 함께 아파해주고 싶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또 뒤척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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