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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집단상담을 배우는데...

이번학기에 남은 전공 학점을 다 채우려고 이것저것 많이도 들었다. 솔직히 별로 관심 없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야 나중에 잘 크지'라는 생각에 꽤 다양한 문야의 과목을 수강한 듯.

처음에 집단상담을 수강한다고 했을 때, 주위사람들이 조금 걱정하더라. 그거 들으면 상담때 완전 눈물바다가 되고 난리도 아니라면서... 솔직히 겁이 많아 났다. 나 의외로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모습들이 많이 있기에.게다가 첫 수업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선생님께서도 겁을 주시는거다.
이 수업은 자기개방이 필수고, 수업도 만만치 않을테니, 혹시나 자기 개방을 못할 것 같은 사람은 정정기간에 빨리 정정하라고. 하지만...ㅡ_ㅡ첨으로 21학점 들어보는데 빼고 다른걸 넣을만한 전공도 없어서 객기로 걍 들었다.

솔직히 수업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도 집단 상담방면에 전문가가 아니신지라, 거의 책을 읽듯이 수업을 진행하셔서 상당히 지루하고 루즈한 수업인데다가, 진도는 뭘 그렇게 많이 나가는지;;; 하루에 한 챕터씩 나가는데 토 나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론들은 왜그렇게 뻔하고 판에 박혔으며 뜬구름을 잡는지... 솔직히 중간고사때 까지는 선생님 원망 참~많이 했다.

내가 왜 이런 수업을 들었을까 막심한 후회를 하면서 중간고사를 그렇게 망치고, 앞으로 어떻게 그 수업을 듣나 고민하던 차에, 수강생들끼리 조를 짜서 수요일 아침마다 집단상담 실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거 재밌잖아! 뜬구름 잡는 것처럼 허황되고 뻔해 보이던 이론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ㅡ_ㅡ시간관계상 5세션밖에 진행을 못하긴 했지만, 실습을 하면서 동시에 이론을 배우니 상담장면에 이론이 적용되는 과정이 조금씩 보였다!! 갑자기 수업이 재밌어졌다ㅋ

원래 집단상담이라는 것, 그 유명한 C.Rogers가 맹글었다고 알고 있다.로저스 좋지~그 사람의 이론이 매우 철학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실존적이라서 사실 잘 이해는 안가는데, 그사람이 내담자를 대했던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이라는 모토는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좋아라 하면서도 '이래서 내담자가 치료된단 말이야?'라는 의문을 품었었는데, 집단상담에서는 되더라ㅡ_ㅡ. 어쩌면 로저스의 이론이 집단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당히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방어가 상당히 심한 사람이다. 상담 중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이고, 내 감정도 잘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나의 말을 돌이켜보면, 나의 과거나 나쁜 감정은 거의 하나도 드러내지 않는다. 뭐ㅡ_ㅡ솔직히 전문적인 리더 없이 5회기 만에 신뢰감이 탄탄하게 형성된다는 것도 조금 힘든 일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나는 내 감정을 가리고 조금 숨어있는 편이었다.

마지막 회기였다. 주제는 죽음. 상당히 무겁고 실존적인 주제라 어떻게 유머로 커버가 불가능한 녀석이었다. '내가 12시간 안에 죽는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그렇다면 그 때 내가 무얼 할건지에 대해서 상상을 해서 써 보고, 집단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그 날 세션의 과제였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은 다 죽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큰 부담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죽는게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내가 썼던 이야기들은 사실, 실제로 12시간 안에 하라고 하면 조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고돌라이제이션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하는데(그러고 조금씩 우는 사람도 있었다.), 갑자기 한 집단원이 어렵사리 어렵사리 자신의 깊은 아픔을 개방해버렸다. 충격적이었다.(뭐 그렇다고 되게 센세이셔널 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라면 그런 상처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좀 더 충격적이었을 수도.

솔직히 상담장면 바깥에서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아프고 무섭고 우울한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아마도 몇 번 보지도 않은 사람이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상당히 불편하고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집단 상담장면이라는 그 마법같은 상황때문에, 나는 그 사람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 맴돌았다. 만약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그 문제에 대해서 좀 더 다룬 다음에는 아마도 내가 참지 못하고 내 문제들을 개방했을지도 모르겠다. 소감문을 쓰면서도 내내 아쉬웠다. 이제 우리 집단이 작업단계에 도달한 것 같은데, 앞으로 그럴 시간이 없다니 못내 아쉬웠다.

의심이 사라졌다. 이론은 맞았다. 집단상담이라는 것, 생각보다 파워풀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이 수업을 들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이 방면으로 전공을 돌리게 될까? 하지만 집단상담이라는 녀석, 매우 민감한 녀석이라 서투른 리더에게 가게 된다면 집단원들은 상당한 데미지를 입을 것 같다. 이런 델리케이트한 녀석!

어찌되었든, 결론은 결국에는 이녀석,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것. 물론 이쪽 방면으로 갈 생각은 그닥 없다만, 내가 신기했던 점은 집단 상담에서는 특별히 새로이 적용되는 이론 없이 기존의 이론을 응용해서 치료를 한다는 것. 솔직히 전공책을 보면서 이해를 하면 그닥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집단상담이 뿌리내린 발판이 인본주의/실존주의와 게쉬탈트라는 것(내가 제일 이해 안되는 두 녀석들의 집합ㅠㅠ). 덕분에 갑자기 철학을 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제 우연히 아는 언니를 만나 할리스에서 커피 한 잔을 했다. 언니가 '너는 취업 준비안해?'라고 묻길래 '언니, 저는 전공이 너무 죠아효ㅠㅠ근데 학점이 안나와~'라고 징징댔더니, 그 언니(도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ㅋㅋ)가 함께 울면서 '그래~그게 딜레마라니까~이자식, 너 나랑 같은 길을 가고 있잖아!'라고 말한다(그 언니도 원생~).ㅋㅋ
참 공통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너무 많은 공통점을 찾아버렸다.ㅋㅋ
어쨌든, 전공 공부는 재밌는데 셤공부는 재미가 없다;;;헐~


사족)잘하면 겨울에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할 수 있을지도. 쭈선배랑 이야기하다가 나는 선배한테 인도네시아어를 가르쳐주고, 언니는 나한테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쳐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슬며시 나왔다.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어제 쭈선배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와닿았던 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거기에 발부터 담그는 것이다.'라는 말. 그리고 언니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역시 나는 정해진 루트를 밟아가는 올바른 사람보다는 조금 괴짜틱한 사람들과 더 잘맞다. 어쨌든 어제 언니 말을 듣고나니 갑자기 또 잡다한 욕구들이 마구마구 솟아오른다(이런 팔랑귀!!!!). 누가 그러더라. 급한 일부터 하지 말고 중요한 일부터 하라고. 솔직히 쉽진 않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는거다. 이런 의욕쟁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