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져가는 화요일 아침.
차가운 공기가 땀구멍 하나 하나에 파고들어 얼굴이 아리지만, 몽롱한 나의 정신은 아직도 꿈나라 저 편에 잠들어 있다. 애써 정돈한 머리를 심술궂은 바람이 헝클어 놓으면, 나는 마치 어린 아이 잠투정 하듯 낮게 투덜거릴 뿐. 코트의 끈이 풀려 달랑거려도, 한아름 들고 있는 책 때문에 속수무책이다. 완벽해!
저 밑에서 짜증이 확 밀려오지만, 그것이 내 얼굴 위로까지 올라오는 데에는 실패했다. 무덤덤하게 중얼거린다. 내가 그렇지 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잠깐동안 끈을 수습한다. 젠장, 급한 일 투성이로구나.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데, 그러기에는 긴급 딱지가 붙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포기할 수 없는 건 내 욕심인걸까.
아침에 처음 만나는 강사의 얼굴은 화난 상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또 상상이 나의 뇌를 지배한다. 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얼굴을 찡그리는 데 썼길래 화난 주름이 잡힌 걸까. 저런 인상이 되는 건 싫다. 비호감이잖아. 보아하니 세상 참 힘들게 살았겠어. 잘난 척 하는 것 좀 봐. 수업 준비도 제대로 안 해왔나봐. 그러면서도 강사의 실없는 유우머에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주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제 버릇이 되어버렸나보다.
눈이 아프다는 핑계로 마지막 수업을 째고 중도로 발걸음을 돌린다. 오늘따라 사람이 귀찮다. 다시 옛날 성격으로 되돌아가는 건 아닌가 싶어서 겁이 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중에 결혼하면 어떡하지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덜컥 숨이 막힌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싫은데. 그럼 죽을 때까지 연애만 해야 하나? 하지만 웨딩 드레스는 입어보고 싶은 걸. 그렇다면 각방을 써야 하나. 정말 말도 안되는 군. 다람쥐길의 눈 쌓이 나무들이 웅웅거리며 웃는다. 알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는 걸. 불편해도 조금씩 맞춰 가는 거겠지. 처음부터 편했던 사람, 있을까? 있구나. 아니, 있었구나. 갑자기 보고싶어 지네. 이별까지도 감싸 안아버린 그녀석. 이제 전역이 한 달도 안남았구나. 이번 주에 휴가 나온댔는데 나왔으려나. 나와도 나 만날 시간이 어딨어. 그래도 경주에 있으면 심심할텐데. 항상 집에 내려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던 녀석. 그 애 생각에 웃음이 난다. 심장을 쥐어짜는 웃음이다.하하하.
즐거운 책을 읽고 싶어. 요즘 너무 우울하고 섬뜩한 책들만 읽었더니 기분이 더 이런가봐. 밝고 가벼운 책들이 보고 싶어. 중도 4층을 입구부터 하나하나 훑어가기 시작한다. 수 많은 책들. 이 속에 있는 동안만큼은 미약하나마 낙관주의와 유포리아가 나의 배리어가 된다. 어린 아이가 과자 가게에서 과자를 고르듯 그렇게 책을 고른다. 이집트 사자의 서, 코 앞에서 본 중세,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심리코드. 핫초코, 블루베리 머핀, 프랄랭. 딸기 무스와 태피와 프렛젤은 다음 기회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반가움이 가득 묻어나는 문자를 받았다. 누구이길래 이렇게 나를 반가워하는 걸까. 추측이 상상으로 바뀌고, 상상이 강을 거슬러 상류로 상류로. 최초의 핸드폰 속의 목록들까지 훑어내려간다. 혜령이, 채영오빠, 건욱선배, 은주, 서연이? 형규인가? 아니면 설마 그 때 그 최악의 쥐돌이는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누구냐고 물어본다. [아아잊혀진사람인가보네]라는 답문. 힌트는 남자 동갑. 조금 전 조심스레 열어보고 누가 볼까 다시 꽁꽁 여미어 둔 보따리 속의 이름을 설마설마하며 꺼내본다. 딩동댕.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광천수같은 순수한 반가움을 초자아가 죄책감과 섞어 버린다. 물 맛이 이상해.
고대역 4번 출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집으로 간다. 내 두 다리는 분명히 에스컬레이터와 붙어있는데, 왜 내 머리는 과거와 미래를 방황하는지. 터벅 터벅 집으로 돌아간다. 수만은 시각적 자극들이 눈을 통해 나의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는데, 그 자극에 내 뇌는 묵묵부답. 나는 잃어버린 내 정신을 찾아 머릿 속을 샅샅이 뒤집고 다닌다. 내가 현재를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녀석은 발목의 통증 뿐.

하루의 반절을 현세가 아닌 다른 곳을 헤매고 다녔다.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다. 피곤해. 몸을 녹일 따뜻한 난로는 어디 있는 걸까.







아참, 지난번 100만원이 넘는 안경의 정답은 제일 첫번째 동그란 안경이었습니다!
무슨 단풍나무가 들어가고 다이아가 어딘가에 박히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120만원 가량 하더군요;;;
그 아래의 핑크색 렌즈의 선글라스 역시 80만원 상당이었어요.
그런데도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하네요;;;
그만한 돈이 있으니까 사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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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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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storyblue.com BlogIcon nnin 2007.01.09 2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렁물 들었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