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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예기치 못한 데이트, 그리고...

홈플러스에서 이것저것 장을 보는데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친구랑 남대문 가는 길인데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르겠다고.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도 지운 상태라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평일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사람이라 속으론 오~예를 백 번 외쳤지만,

겉으론 조금 무관심한 듯 '그래요'라고 말했어요.

집에 와서 이런저런 가사 노동을 하고 있던 중에 오빠에게서 20분 뒤면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고,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삔냥은 부리나케 나갈 채비를 했지만,

역시 오빠가 먼저 도착하고 말았네요.

헐레벌떡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니

저어 앞에 조금 피곤한 듯한 오빠의 어깨가 보입니다.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네요.

삔냥 특유의 대책없는 밝은 얼굴을 내세우고 쪼로로 달려가 옆에 앉습니다.

뛰어 오느라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는 삔냥에게 무언가를 내미는 오빠.


중광 지하에 들러 캔음료 두 개를 뽑아들고 해가 진 학교를 배회합니다.

서관 앞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아주 잠깐의 여유를 즐깁니다.

모레 대한항공 면접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사람에게

지금 현재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밝은 웃음 뿐이로군요.

마음 같아선 날이 밝도록 같이 있고 싶지만,

서로의 내일에 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무거운 엉덩이를 벤치에서 떼어냅니다.

항상 길게만 느껴졌던 집에 오는 길은 오늘따라 왜이리 짧은지,

맨날 서너번씩 틀리던 건물 앞의 비밀번호는 오늘따라 왜이리 잘 눌러지는지...




괜히 집에 와서 오빠가 선물한 삔으로 이래저래 머리를 묶어봅니다.



왠지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늑한 설레임 때문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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