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독특한 소재를 사용하기로 정평이 난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고 하니,
무언가 매우 신선할 것 같은 영화였기에,
사실 아무도 함께 보러가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보려고 했던 영화였다.
기대만큼 선선했던 소재와 캐릭터.
중간 중간 약간의 시니컬한 유머.
꿈을 꿀 수조차 없을 만큼의 디테일한 심리묘사.
그것은 박찬욱의 영화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영화를 보는 게 너무나 힘이 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영화관을 나가기엔 뒷얘기가 궁금하지만,
영화와 캐릭터에 몰입하기엔 묘하게 지루한 그런 영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를 보러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생각 꾸러미를 짊어지고 와 버린,
마치 놀이공원에서 시험을 보는 그런 느낌?;;;;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캐릭터의 개성이 너무 강하다.
여하튼 어제는 이 영화 하나로 꽤나 머리 아픈 저녁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양미숙.
조금만 흥분을 해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안면홍조증에 고생을 하는 중학교 영어 선생.
원래는 고등학교 러시아어였지만, 이쁜 선생에게 떠밀려 좌천된 불쌍한 인생.
고아에, 왕따에,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유부남.
참 기구한 운명.
성격도 참 안좋다.
눈치라곤 오래 전에 쌈싸 드셨고,
항상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우기는데,
그 생각 속에는 아무런 일관성도 없다.
예쁜 것들은 무조건 싫어하고,
인생에 대한 열의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없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이라는 걸 가졌다는 게 신기할 뿐.
만약 내 옆에 저런 사람이 있다면, 진짜 상종도 하기 싫을 정도.
그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무언가 이유가 있잖아요."
이 말 한 마디로 그녀는 그녀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등교길에 커다란 구멍을 내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유부남의 부인이 가르치는 밸리댄스를 배우고,
스토킹을 하고,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유부남의 딸과 함께 음란채팅을 하고...
그녀가 이 행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유부남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남자는 이유가 없어. 다 그냥이야."
그것은 그녀가 세상을 부정하는 방식이다.
유부남 선생이 자기보다 퀸카인 다른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도 그냥.
남자들이 퀸카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내는 이유도 그냥.
그렇게 그녀는 세상을 부인하고 자기 자신을 꽁꽁 감싸맨다.
그런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처음엔 그럭저럭 봐줄만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ABSOLUTE LOSER
그녀를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말.
하지만 그녀를 마냥 비웃기에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어쩌면 그것은, 나는 저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일지도.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녀가 자라오면서 세상을 건전하고 바르게 바라보기에는 그녀에겐 상처가 너무 많다.
그러한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나가는 과정보다
아픈 부분을 덮어두고 잊는 쪽이 더 쉬웠을 것이다.
오래 전 다른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는 마음의 노력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따르면 한 사람의 성격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되는데, 이 중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를 통제하고 조율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아가 무너지면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므로 커다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자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방어기제인 것이다.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여러 가지 방어기제 중 더 성숙한 방어기제를 학습할 기회가 많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양미숙은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고아에 왕따라면, 건전한 성격을 가르쳐줄만한 모델도 없었을 뿐더러, 동질감과 자존감을 학습할 또래집단 속에도 포함되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힘겹게 형성했을 것이며, 그러한 와중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설사 적절하지 못한 성격을 학습한대도, 그것을 지적해줄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비교적 원초적이고 쉬운 길을 택해서 갔을 것이다. 잘못된 부분을 인식하고 고치기에는 그녀의 자존감에 너무나 큰 상처가 가고, 또 그보다 에너지를 써야 하는 다른 부분이 너무나 많다. 내가 틀렸고, 다른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쉬우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방어기제의 하나로서 그녀는 억압과 투사, 또는 부인이라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한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그녀는 외적 귀인을 통해 자아를 보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녀의 모든 행동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싫지만, 그녀와 함께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현재 시행착오 중일 뿐이고,
단지 그녀를 인도할 선생님이 없기에 모든 것을 혼자해야 할 뿐이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밀려오는 짜증 속에서도 난 그녀가 조금 더 성숙해지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조금 다른 형태의 양미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 저녁은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다.
그리고 조금은 내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을 탓했다.
만약 내가 그러한 사실들을 몰랐더라면,
나는 단호하게 그 영화를 '재미 없는 영화'라고 낙인찍고 즐거운 저녁을 보냈을텐데
사람이 마음에 대해서 어깨너머로 좀 안다는 사실때문에
나는 그 영화에 대해서 어떠한 나쁜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