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해가 넘어간다는 데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똑같은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체 일년 내내 한 계절밖에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날짜 감각이 무뎌진 데다가,
죽을 때 까지 내 옆에서 내 응석을 받아줄 사람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새 해라는 건 그저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소용돌이들이 있는가를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고.
수 많은 문제들이 내 눈 앞에 떠올랐는데,
이것들을 모두 마무리짓고 해를 넘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올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 그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어떻게 외롭고 고독할 수가 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과 되어서야 처음으로 외로운게 무언지 느끼게되었다.
작년에 내가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부모님과의 마찰이 시작되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게된 나를 부모님은 상당히 자랑스러워 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커다란 야망을 품은, 이름 높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부모님은 내가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서 박사 학위까지 따고,
텔리비전이나 신문 등등에 이름이 실릴 수 있기를 바라셨다.
죄송하게도 나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고,
'부모님의 반대'라는 핑계로 접었던 미술 공부가 미친 듯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휴학을 하면서 그 갈등이 표면 위로 떠올라 서로 부딪히게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부모님이 미웠다.
철이 없었던 게지.
불꽃 튀기는 접전이었다.
한국에 나온 엄마와 거의 매일 싸우다시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빠가 그러셨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대신,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어라."
아빠가 허락해주셨다.
그게 올해 초였다.
아빠의 그 말에 전화를 끊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울었었다.
'딸'이라는 게 무슨 감투라도 되는 양 안하무인이었던 내 행동들이 죄송했고,
드디어 나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이토록이나 사랑하는 부모님과 앞으로 죽을 때까지 떨어져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슬프고, 외로웠다.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자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니, 오빠, 동생 중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기왕이면 잘생긴 오빠로ㅡ_ㅡ;;)
아직까지 나는 부모님의 '인정'은 획득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허락'만 받았을 뿐이다.
또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느낀 사건 하나.
올해 4월 쯤, 살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친구 자전거를 가르쳐주러 나간 사이에 잠깐 다녀가신 듯.
혼자 자취하는 집이라 그닥 많이 가져갈 건 없었지만,
도둑이 들었다는 데 대한 심리적인 타격은 상당했다.
집에 들어와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컴퓨터가 사라져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저기 어질러진 살림살이들과,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는데,
황당하게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친척들은 모두 부산에 있고,
서울에 있는 친한 친구들 또한 그 늦은 시간에 도움을 청해도 날 도울 수 없는 상태.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
인도네시아에 계신 부모님.
(당시 아빠는 포커 중이었고, 돈을 무진장 따고 있었다고;;;)
물론 그 때 친구들과 학교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머리속이 하얘지는 상황에서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상당히 짜증이 났었다.
물론 나쁜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1년여 만에 복학을 하고 좋은 사람들은 많이 사겼다.
그리고 원래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돈독해 졌다.
연애할 때는 연애하느라 주위사람들에게 신경을 잘 못 써줬고,
남자친구가 군대 간 후에 곧 휴학을 하고 그림 배우러 다니느라 학교 사람들과 거의 연락 못했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연락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특히 많은 과사람들을 만나 내년에 전공 수업을 혼자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ㅋㅋ
먼저 말 걸어준 계현언니와,
현택 선배를 포함한 F4 복학생 오빠들ㅋㅋ
철없는 큰누님 여길언니와,
개강파티에서 만나 완전 '급'친해진 손민 오빠.
그리고 손민오빠 덕에 만나 알게 된 다승오빠.
너무나 소중한 인연들을 엮어 버렸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혼자라는 느낌'이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는 살인을 하더라도 내 편이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내 전 남자친구.
그렇게 든든한 백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멀리 있었다.
사실,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다.
1월 31일이면 전역하는데,
하루에 수 차례 전화로 안부를 묻고,
한달에 한 번은 휴가를 나오는데,
전화 통화도 못한 100일을 참았는데,
그래서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라는 것, 기다린다는 것,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사실은,
내가 정작 필요로 할 때 그 사람이 내 옆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
안다.
그는 그 사실에 대해서 항상 자신이 미안해 했다.
나도 그게 그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외로울 때 그는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나보다.
그랬는데 그때, 다른 사람이 단 한번 내 심장을 어루만져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싶었다.
본인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것은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다시는 하지 않을거라 맹세했던 짝사랑을 내가 또 먼저 시작해 버렸다.
잘 될줄 알았는데,
혼자 성급하게 설익은 감을 덥석 베어 문 격이었다.
쓰고 떫어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
그래도 좋아서 마냥 들이댔었다.
훗.....바보.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본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더라.
"여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그 한마디에 심장 한켠이 숭텅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말을 듣게 한 내 자신이 화가 났다.
그래서 짝사랑을 접었다.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정말 짝사랑은 안할 거다.
(....라고 말은 해도...;;;)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 아직 크려면 한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내가 외롭고 고독했던 이유는
세상은 나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사랑도 좋고, 연애도 좋다.
누군가를 사귀면 그 사람과 두 손 맞붙잡고 걸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나, 더이상 마냥 서로 기대기만 하는 사랑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험준한 산을 타면서 그 사람이 비틀거리는 나를 붙잡아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나 대신 걸어가는 것은 아니니까.
미련이 많이 남는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에게도, 내가 잠시나마 좋아했던 그 사람이게도,
제대로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한 부모님께도.
연애 문제를 핑계로 소홀했던 학업에도,
다른 것도 제대로 안하면서 같이 등한시했던 그림에게도.
남은 일주일간 갈 수 있는 만큼은
힘내서 달려 보아야지.
역시 내 가장 큰 장점은 "밝음"이니까.
이름처럼 빛나야지!!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똑같은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체 일년 내내 한 계절밖에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날짜 감각이 무뎌진 데다가,
죽을 때 까지 내 옆에서 내 응석을 받아줄 사람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새 해라는 건 그저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소용돌이들이 있는가를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고.
수 많은 문제들이 내 눈 앞에 떠올랐는데,
이것들을 모두 마무리짓고 해를 넘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올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미칠 듯이 외롭고 고독한 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 그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어떻게 외롭고 고독할 수가 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과 되어서야 처음으로 외로운게 무언지 느끼게되었다.
작년에 내가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부모님과의 마찰이 시작되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게된 나를 부모님은 상당히 자랑스러워 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커다란 야망을 품은, 이름 높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부모님은 내가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서 박사 학위까지 따고,
텔리비전이나 신문 등등에 이름이 실릴 수 있기를 바라셨다.
죄송하게도 나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고,
'부모님의 반대'라는 핑계로 접었던 미술 공부가 미친 듯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휴학을 하면서 그 갈등이 표면 위로 떠올라 서로 부딪히게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부모님이 미웠다.
철이 없었던 게지.
불꽃 튀기는 접전이었다.
한국에 나온 엄마와 거의 매일 싸우다시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빠가 그러셨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대신,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어라."
아빠가 허락해주셨다.
그게 올해 초였다.
아빠의 그 말에 전화를 끊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울었었다.
'딸'이라는 게 무슨 감투라도 되는 양 안하무인이었던 내 행동들이 죄송했고,
드디어 나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이토록이나 사랑하는 부모님과 앞으로 죽을 때까지 떨어져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슬프고, 외로웠다.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자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니, 오빠, 동생 중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기왕이면 잘생긴 오빠로ㅡ_ㅡ;;)
아직까지 나는 부모님의 '인정'은 획득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허락'만 받았을 뿐이다.
또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느낀 사건 하나.
올해 4월 쯤, 살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친구 자전거를 가르쳐주러 나간 사이에 잠깐 다녀가신 듯.
혼자 자취하는 집이라 그닥 많이 가져갈 건 없었지만,
도둑이 들었다는 데 대한 심리적인 타격은 상당했다.
집에 들어와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컴퓨터가 사라져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저기 어질러진 살림살이들과,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는데,
황당하게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친척들은 모두 부산에 있고,
서울에 있는 친한 친구들 또한 그 늦은 시간에 도움을 청해도 날 도울 수 없는 상태.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
인도네시아에 계신 부모님.
(당시 아빠는 포커 중이었고, 돈을 무진장 따고 있었다고;;;)
물론 그 때 친구들과 학교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머리속이 하얘지는 상황에서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상당히 짜증이 났었다.
물론 나쁜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1년여 만에 복학을 하고 좋은 사람들은 많이 사겼다.
그리고 원래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돈독해 졌다.
연애할 때는 연애하느라 주위사람들에게 신경을 잘 못 써줬고,
남자친구가 군대 간 후에 곧 휴학을 하고 그림 배우러 다니느라 학교 사람들과 거의 연락 못했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연락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특히 많은 과사람들을 만나 내년에 전공 수업을 혼자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ㅋㅋ
먼저 말 걸어준 계현언니와,
현택 선배를 포함한 F4 복학생 오빠들ㅋㅋ
철없는 큰누님 여길언니와,
개강파티에서 만나 완전 '급'친해진 손민 오빠.
그리고 손민오빠 덕에 만나 알게 된 다승오빠.
너무나 소중한 인연들을 엮어 버렸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혼자라는 느낌'이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는 살인을 하더라도 내 편이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내 전 남자친구.
그렇게 든든한 백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멀리 있었다.
사실,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다.
1월 31일이면 전역하는데,
하루에 수 차례 전화로 안부를 묻고,
한달에 한 번은 휴가를 나오는데,
전화 통화도 못한 100일을 참았는데,
그래서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라는 것, 기다린다는 것,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사실은,
내가 정작 필요로 할 때 그 사람이 내 옆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
안다.
그는 그 사실에 대해서 항상 자신이 미안해 했다.
나도 그게 그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외로울 때 그는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나보다.
그랬는데 그때, 다른 사람이 단 한번 내 심장을 어루만져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싶었다.
본인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것은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다시는 하지 않을거라 맹세했던 짝사랑을 내가 또 먼저 시작해 버렸다.
잘 될줄 알았는데,
혼자 성급하게 설익은 감을 덥석 베어 문 격이었다.
쓰고 떫어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
그래도 좋아서 마냥 들이댔었다.
훗.....바보.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본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더라.
"여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그 한마디에 심장 한켠이 숭텅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말을 듣게 한 내 자신이 화가 났다.
그래서 짝사랑을 접었다.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정말 짝사랑은 안할 거다.
(....라고 말은 해도...;;;)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 아직 크려면 한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내가 외롭고 고독했던 이유는
세상은 나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사랑도 좋고, 연애도 좋다.
누군가를 사귀면 그 사람과 두 손 맞붙잡고 걸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나, 더이상 마냥 서로 기대기만 하는 사랑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험준한 산을 타면서 그 사람이 비틀거리는 나를 붙잡아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나 대신 걸어가는 것은 아니니까.
미련이 많이 남는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에게도, 내가 잠시나마 좋아했던 그 사람이게도,
제대로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한 부모님께도.
연애 문제를 핑계로 소홀했던 학업에도,
다른 것도 제대로 안하면서 같이 등한시했던 그림에게도.
남은 일주일간 갈 수 있는 만큼은
힘내서 달려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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