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내 구미에 맞는 영화.
보다 울었다면 비웃을거야?ㅋㅋ
한 고등학생이 있다. 그 아이는 어려서 들었던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라는 노래를 가슴에 품고 자랐다. 그 아이의 코 밑에는 마돈나와 같은 점이 있다. 예쁜 옷을 좋아하고, 렉시의 애송이를 끝내주게 불러제낀다. 학교 일어 선생님을 짝사랑한다. 몰래 화장도 해 본다. 그 아이에게 특별난 점이 있다면, 남자라는 것.
성 정체성이라는 것은 아직도 왈가왈부하기 썩 편하지많은 않은 주제다.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는 당연 그들의 의사 또한 존중되어야 하지만, 머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가슴이 느끼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하리수를 응원하고 싶고, 영화 Hedwig을 상당히 감명깊게 보았다. 하지만 나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한 번 수정이 가해진 그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과연 내가 그들을 옹호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만약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몸과 내 마음이 다르다는 건 상당히 슬픈 일이다. 아니, 슬픈 일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자들은 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만한 것을 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혹자는 대신 뛰어난 두뇌를 물려받지 않았냐고 말하지만, 사실 머리가 좋아서 인간은 더 많은 상처를 받고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인간은 그렇게 상처받기 쉬운 민감한 존재들이고, 그런 존재들은 작은 상처에도 너무나 아파한다.(사족이지만 그걸 커버하기 위해 종교가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오동구라는 녀석은 담담하게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걸어간다. 용감한 녀석.
영화 속에 사람들은 어쩜 이리도 지지리 궁상인지. 동구의 가장 친한 친구 종만이는 꿈을 찾아 방황하는 게 거의 발악 수준이다. 게다가 그 도전 종목들 또한 어찌나 중구난방으로 일관성 없이 다양히 주시는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지, 아니 그 생각이란걸 하는건지 fMRI 한번 찍어보고 싶을 정도다. 아버지는 부상으로 강퇴(?)당한 전직 복서로, 알코올 중독에 애들을 패고, 도망간 엄마는 그 나이에 롯데월드에서 장난감을 판다. 그리고 들어간 씨름부는 완전 하자클럽이다. 한심해 보이는가? 그럼 이 얘기는 어떤가? 한 소녀의 부모님은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한 공돌이 공순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잘 키워보겠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소녀는 철없어 반항만 한다. 소녀의 사촌 언니는 중학교때 가출해서 스물이 넘어서 집에 들어오고, 사촌 오빠는 고등학교도 재수로 들어가서 졸업하고 하는 일 없이 쭈욱 백수로 놀면서 집에 여자나 데리고 들락거린다. 친하다는 친구는 얼굴 싹 고쳐서 가수한단다. 이것도 한심한가? 내얘긴데? 현실은 다 그런거지, 뭐.
어쨌든 오동구는 마음에 몸을 맞추기로 한다. 왜냐? 몸에 마음을 못맞추니까. 우리가 학교에 가는 이유는 학교가 우리한테 못오기 때문이고, 개가 꼬리를 흔드는 이유는 꼬리가 개를 못흔들기 때문이고 막 그런거거든. 그러려면 5백만원이라는 큰 돈이 필요한데, 천하장사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면 상금이 딱 5백만원이란다. 여자가 되고 싶은데, 여자가 되려면 남성적인 스포츠를 해야 한다. 이런 슬픈 모순이 세상에 또 어딨나. 어쨌든 시작한 동구, 꿈을 향해 달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쬐끄만한 고등학생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저토록이나 열심인데, 나는 뭐했나. 정말 진심으로 원한다면 박이 터지고 피가 배어나와도 곧장 달려야 하는 건데,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스리슬쩍 편한 길로 발을 빼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길을 벗어나다보니 어느 새 영 딴 길로 새어버렸다. 뭐, 물론 지금의 내 목표 역시 나에게는 상당히 소중하지만, 가끔 그 때 내가 뜻을 굽히지 않고 내 소신껏 걸어왔으면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금보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지금보다 행복할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큰 열정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동구의 마음이 아버지를 움직였다. 다시는 안 볼 거라고 아들에게 으름장을 놓던 아버지, 외면하고 들어가려는 동구의 손을 용기내어 힘겹게 잡는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가족인데. 세상에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족 밖에 없다. 그래서 피가 무서운거다. (나는 한달에 한번씩 봐서 별로 무섭지가....퍽!;;;) 내 편이 되기 싫어도 내 편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온 세상을 통틀어서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지만, 그럼에도 내가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중한거다, 가족이란.
그래서...영화를 보면서 "이건 내 얘기잖아!"라고 절규한 건 나밖에 없는건가?
그리고 이건 사족이지만, 애송이 노래를 부르며 춤까지 추는 우리 덕환군이 어찌나 귀엽던지*ㅡ_ㅡ* 완전 반하고도 2/3을 더 해버렸네(미안). 백선생님은 그 은근한 카리스마가 역시나 멋지지만 이제 좀 지겹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갈 때쯤 알았는데, 엄마가 이상아더만? ㅡ_ㅡ;;모르고 잇었네;;; 은근 까메오가 많은 영화다. 수퍼사이즈에, 문세윤에, 초난강까지!!! (영화에서는 쿠사나기 츠요시라고 불러달라고?)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고, 귀도 즐거운 영화. 하지만 광고처럼 마냥 즐겁고 웃기기만 한 영화는 아니었다. (물론 그래서 내가 꽂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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