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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Books & Movies]

호로비츠를 위하여

새해를 함께 맞은 영화다.

이 영화, 아무래도 상당히 치우쳐진 감상문을 쓰지 않을까 싶다.

읽으시는 분들은 알아서 필터링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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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내가 엄정화를 쫌 좋아라 한다.

취향이 독특한건지 어쩐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 주변에서 엄정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지만 나는 엄정화가 좋다.

얼굴을 전부 다 뜯어고치고, 나잇살 먹어서 토크쇼에서 주책이나 부리고, 그 나이에 시집도 안가고 가창력도 별로면서 또 새 앨범이나 내고.

그래도 나는 엄정화가 너무 좋다.

토크쇼 출현해서 "나 고쳤어요"라든지 "단시간에 살 빼려면 굶는 수밖에 없죠" 등등의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그녀의 솔직한 모습이 좋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녀의 집착과 끈기도 좋다.

조금 오버하는 듯 하는 그녀의 연기도 좋다.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끌린다.

개봉 당시 별로 재미 없다고 평이 난 홍반장도 나는 그녀 덕분에 재미있게 보았고,

그 평 안좋은 오로라공주도 나에게는 그닥 나쁜 영화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이 영화도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마 안봤을 거다.

엄정화라서 봤다.




'부모'라는 단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걸까.

아마도 보통은 '친근함'이라든가 '감사함' 등의 긍정적인 감정이나 '죄송스러움' 등의 부채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대한민국 같은 효 중심 사회에서는 좀 더 알싸하고 아련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까.

Ravin은 부모됨의 동기를 크게 4가지로 구분했었다.

첫번재 동기는 숙명론적 동기다.

요즘 많이 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당연히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종교적 이유든 문화적 이유든.


두번째 동기는 이타주의적 동기다.

Erikson의 이론에 따르면 성년기의 발달과업은 생산성vs침체성인데, 이 생산성의 특성인 이타심, 책임감, 민감성 등의 특성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세번째 동기는 도구적 동기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동기로, 부모가 자녀를 통해 제2의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다.

네번째 동기는 자기도취적 동기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음을 공표하는 한 방법이고, 이것이 부모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한이 많은 사람일수록 도구적 동기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피아노를 공부한 지수는 맺힌 게 참 많다.

그녀가 꿨던 꿈의 크기만큼, 그녀는 좌절의 고통을 겪었을 테고,

그 좌절의 나락이 크고 깊었던 만큼, 그녀에게있어서 경민의 존재는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루어 줄 신의 선물로 보였을테다.

하지만 그녀, 욕심과 집착이 과했다.

그녀는 경민의 재능에만 관심이 있었지,

경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얼 원하는지 민감하게 신경써주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마귀처럼 보였다.(아아~_~투사야, 투사~)

부모의 도구적 동기는 자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역시나 무엇이든지 과하면 독이 되는 법.

나는 솔직히 우리나라 부모들의 그 뜨거운 학구열이 이해가 안간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며 자녀들을 좁고 높은 틀 속에 옭아매버린다.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런 부모에 대한 불만까지도 죄책감으로 이고 가는 자녀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아이들은 자신의 형태조차 잊어버리고 똑같은 틀에 억지로 자신을 구겨넣는다.

잔인하리만치 잘못 되었다.

그건 사랑의 가면을 쓴 집착이다.




아직도 통합되지 못한 내 안의 양가감정 찌꺼기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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