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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Books & Movies]

신기생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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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경품과 함께 기념샷~


얼마 전, Hee님 블로그의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그리고 Hee님과 직접 만나 선물을 전달받는 호사도 누려 보았다~~음화화화화!!!
그 당시 내가 읽고 있었던 '마녀 문화사'를 유심히 쳐다보시는 Hee님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저는 소설을 안읽어요'라고 당당하게 말 해 버린 삔냥. 무안한 듯 수줍게 책을 내미는 Hee님의 손길에 머쓱해져 버렸다.(Hee님, 죄송해요~ 삔냥 대뇌피질에는 주름이 부족해서 당최 생각이란 걸 잘 하지 않는답니다;;) 선물이라면 양잿물도 땡큐를 외치며 원샷을 하는 삔냥, 여자라 대머리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을 하며 짬짬이 신기생뎐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 소설은 양귀자의 '모순' 이후로는 손을 뗀 지라, 그 특유의 애달프고 걸죽함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한참을 읽지 않았다. 시를 읽었으면 읽었지, 소설을 읽지 않았다. 한국 소설 속 고요한 정적과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작가의 한에 가슴이 차르르 떨리는 느낌이 싫고, 책 속에서 옮아붙어 떨어지지 않는 애달픈 한스러움에 몇 날을 멍하니 혼을 빼 놓는 내가 싫어서. 오래도록 살아 온 타지에는 없는 한(恨)이라는 정서에 대한 나의 면역력은 택도 없이 낮아서 극소량만 주입해도 오래도록 열병이 식을 줄을 몰랐다. 밝은 빛만을 추구하는 불나방같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애틋하고 아릿한, 체념 석인 정서. 송사리처럼 요리조리 피해만 다니다가 제대로 촘촘한 그물을 만났다.

리뷰를 쓰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내게 이 책을 선물한 Hee님은 어떤 느낌으로 책을 읽어내려 갔을까. 이 책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받은 사람이 책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선물 받은 책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 조금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본다. 나는, 사랑과 한을 보았다.

"기생은 마음에 굳은살이 배겨 송판처럼 딱딱해져야 온전한 기생으로 완성이 된단다. 송판처럼 딱딱해진 다음에야 몸도 마음도 물처럼 부드럽게 열릴 수가 있는 법이거든. 정을 둔 곳이 있고 없고는 나중 일이다. 나는......남자를 믿지 않았다."
(중략)
" 남자를 믿은 적이 없으니 그들이 날 버려도 배반을 해도 난 언제나 모든 걸 내줄 수가 있었다. 남자를 부정하고 나니 모든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너른 품이 생기더라. 이게 내 사랑의 방식이었느니. 느들 보기엔 내 사랑이 물 위에 뜬 거품처럼 부질없어 보였는지 몰라도."
"......"
"뜬금없이 들리겠다만, 철새들이 한 철 머물다 가는 철새도래지라고 있지 않냐? 사계절 먹이가 풍부하고 추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아서 철새들의 쉼터나 잠자리가 되어주는 을숙도나 주남저수지 같은 곳 말이다. 나는, 내 무릎이 남정네들에게 철새도래지 같은 그런 도래지가 되었으면 싶었구나.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여인의 한 맺힌 사랑인가, 모든 것을 초월한 아가페적 사랑인가. 한 때는 내가 동경했던 사랑의 모양새다. 사심 없이 오는 사람을 맞이하고, 떠날 때 웃음지으며 보낼 줄 아는 사랑 말이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오라는 귀여운 앙탈조차 초월해 버린, 그런 너른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너른 곳은 춥더라. 오마담은 그 추운 곳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꼿꼿이 서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소리 하나를 친구삼고...... 극한에 치달으면 오히려 반대로 된다는 삶의 모순. 얼어죽는 사람은 죽기 직전에 따뜻함을 느끼고, 죽도록 불행한 사람에게 세상은 샤방샤방 장밋빛으로 보인다. 오마담 역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아, 땅 위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지.
영화나 소설 속에서처럼 리얼리티가 심각하게 결여될 때에만 사랑은 그 이름값으로 간신히 아름답다네.
곧 죽어도 사랑이다.
소설을 보면 세상엔 이렇게나 사랑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소설을 안봐. 소설 속의 사랑타령을 보고 있자면 마음 주어서 아팠던 기억들이 스물스물 올라와 어느 새 심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옛 사랑의 친구인 연민과 고독 역시 함께 올라와 혈관을 타고 몇 날 몇 일을 돌아다니겠지. 이번 건 후유증이 얼마나 갈까나.





Hee님, 좋은 책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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