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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Books & Movies]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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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기분일 때 나는 우울한 영화를 보지 않는다. empathy보다는 sympathy 쪽에 가깝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의 감정 전달이 꽤다 잘 되는 편이고(그래서 나는 나를 '물'에 잘 비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한 기분에 우울한 영화나 음악을 접하게 되면, 나의 우울지수+영화 속 등장인물의 우울지수가 되어버려 헤어나올 수 없는 저 밑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 때문이다. 또, 나는 한 번 제대로 울음을 터뜨리면 내 몸 속의 가용 수분을 모조리 동원 배출할 때 까지 대책없이 울어버린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나면 눈이 빠질 듯 아프고, 입이 마르고, 입술이 트고, 가슴이 묵직하고, 어깨가 결린다. 따라서 울 고 난 후유증도 상당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파를 싫어한다. 신파를 싫어하기에, 절대로 이 영화를 안 보려고 했다.

이 영화를 안 보려고 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이 땡기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고를 때 배우의 영향을 꽤 많이 받는 편이다. 그 영화가 아무리 재미 없다고 네이버 평점이 바닥을 때려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라면 보고 후휘하는 한이 있더라도 거의 항상 영화관에서 보아야만 한다. 반대로,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배우라면 그 영화가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지 않는 이상은 영화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영화 역시 나의 관심 밖의 것이었다. 우선 여주인공인 이나영은 나에게 그렇게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나뚜르 광고에서 이나영이 얼굴에 묻히면서 메론 아이스크림을 먹는 씬이 내 기억 속의 이나영의 전부다. 그리고 강동원은 무관심에서 더 나아가 싫어한다.(내 주위의 여자들 중 강동원 싫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일단 나는 중성적인 배우들을 안좋아하기 때문에 이준기나 강동원은 마이너스 점수. 게다가 강동원은 왠지 게이스럽고 말수도 적으며 우울해 보인다. 얼굴에 우울을 달고다니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쳐다보기도 싫다. 강동원은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나빠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게다가 이 영화, 공지영의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정말 나와는 인연이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일단 소설 원작의 영화가 성공을 하려면 소설을 본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소설의 내용과는 연관이 되지만 소설 속에 표현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어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티브만 소설에서 가져오고 아예 새로운 영화를 만들든가. 또한 그렇게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면서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편집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여태껏 내가 만나 본 우리나라 영화들로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의 영화 제작자들은 그런 디테일한 부분의 배려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한국인의 감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또한 원작가가 공지영이라는 이유 역시 내가 영화를 보는 데 망설이게 한 큰 부분이다. 중고등학교 때 그녀의 소설을 꽤나 좋아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여러 권 찾아 읽었다. 그런데 그녀의 책을 읽고 나면 왠지 가슴 한 켠이 묵직해 지는 기분이랄까. 삶의 무게가 불편하게 부대끼는 기분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살코기만 있는 수입 돼지 목살을 혼자서 2인분이나 해치운 뒤의 거북함 정도?!

그래서 안볼랬다.(어이쿠, 영화 감상 이전에 욕만 한바가지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냄새가 나는 우울을 공유하고 있는 무지 친한 친구 한 명이, 우울할 때 찔끔 찔끔 우는 것보다 차라리 미친듯이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어버린 다음에 잊는 것이 낫다고, 그럴 때 이 영화가 최고라고 말하며 추천해 주었다. 그래서 '오냐, 나도 한 번 울어보자'라는 생각에 아침 댓바람부터 영화를 틀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전실패. 요인 중 하나는,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신파였다는 것. 아주 오래 전, (약 10여 년 전인 것으로 추정) 한국에 그런 신파 영화 바람이 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히트를 쳤던 영화가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편지. 영화는 상당히 재밌게 봤다. 아직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그래서 매일 가지고 다니는 시 중 하나가 그 영화에서 나왔던 황동규님의 즐거운 편지다. 어쨌든 거기서도 박신양이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되는 내용이었다. 슬프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옆에 화장지까지 준비해 놓고 본 영화였는데, 눈물은 개뿔. 슬프고 안타까운 건 맞는데 눈물은 안나더라. 어쩌면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는 나에게 슬픔보다는 공포의 감정을 더 불러일으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시고기도 그랬고, 국화꽃 향기도 그랬다.

영화 정말 우울했다. 온 세상의 우울은 다 떠앉고 있는 우울한 군상들이 모여 제대로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신다. 자식들 때문에 자신의 꿈을 억지로 포기한 엄마, 사촌 오빠에게 강간당했으면서도 입을 다물어야 했던 자살중독증 딸. 가난으로 동생을 가슴에 묻고, 꼬이기만 하는 인생에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 남자. 바닥세계. 가식적인 가족모임. 사람 죽이는 직업을 가진 간수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사형수들. 우울한 요소들을 잔뜩 삽입해 놓고 우울하니까 울어라고 강요하는 영화다. 애초에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에 나는 이상하게 반발심을 느낀다.(아무래도 난 반사회 성향이 강한 듯하다.) 그보다 오히려 더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더 큰 슬픔과 아픔을 느낀다. 그래서 캔디가 슬프고, 천하장사 마돈나가 짜안한 것이다.

어쨌든, 울려고 본 영화에서 울지 못했기에 다른 쪽으로 해소해 버렸다. 어쩌면 내가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영화가 말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만. 그냥 좀 잔잔한 영화였다. 하지만 인생의 우울함이 너무 짙었어. 옮아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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