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찬바람 들까, 창문 꽁꽁 닫고 있었는데, 첫 눈이 왔다고 한다.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인 걸까. 지난 1년을 하얗게 덮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추억들을 새겨나갈 때인걸까.
최근 생각이 많아졌다. 그 생각의 시발점은 학교를 물들인 노오란 은행잎. 너무나 늦게 찾아 온 가을 때문에 올해는 단풍을 볼 수 없을거란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머물러 주었던 따가운 가을 햇살덕에 학교에서나마 단풍을 맛볼 수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올려다 본 은행잎 속에서 1년 전 그 때의 단풍을 떠올렸다. 그 때에는 그 때 나름대로 빡빡하게 생활한다고 느꼈었는데, 단풍이 드는 것도, 가을이 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던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 순간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마냥 1년 전 그 상황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나의 눈 앞에 펼쳐졌다.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들이지만, 그 때는 얼마나 아파했던가. 그 때 저미던 가슴 왼켠의 시큰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 느낌이 1년 여 간의 추억들에 밀려 기억의 책장 저 뒤켠으로 밀려나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나는 간사한 인간이어라.
요즘 제일 많이 느끼는 건, 역시 팔자라는 게 존재할 거라는 확신이다. 그토록이나 벗어나고 싶어하던 인생의 패턴이 신기하리만치 반복이 되는 건, 팔자 탓이 아니고는 그 누구를 탓하랴.
최초의 이별 대상은 아버지. 4살의 꼬맹이는 인도네시아가 옆동네인 줄 알았고, 아빠는 출장가는 줄로만 알았다. 아니, 실감도 안났지만, 그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다른 날과 똑같이 아빠를 배웅했다. 엄마의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는지, 집안 공기는 왜 그렇게 삭막한지, 4살박이가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몇 번의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한 후 아이는 홀로 남겨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안고 자라났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지만, 어째서 그렇게 내가 필요한 사람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는지.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그 전에 벌써 마음의 정리부터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내 옆에 둘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럴 수 없는 사람과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요즈음 호감을 가지고 만나고 있던 사람이 원하던 곳에 취직을 했다. 옆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지켜 본 입장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두려움이 덜컥 밀려왔다. 아, 이 사람도 내 옆을 떠나려는구나. 이미 오래 전 부터 예상했던 시나리오이며, 따라서 대사 역시 정해져 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외울 수 있는 단 두 글자의 단어, 안녕. 그 단어만 말하고 나서 나는 내 곁에 있어 줄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할 기회는 너무나 많았다. 처음엔 컴퓨터를 보고 두 번 세 번씩 확인하는 그 남자의 모습에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두 번째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며 당당하게 얘기하는 그 사람의 모습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 날에는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잠이 든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고민을 하는 거냐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그 얼굴만 보면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사랑인거니?
모든 것을 털어놓은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나를 안심시킬 만한 아무런 확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부탁하고 요청했다. 한 번 해 보자고. 나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그 일들 하나씩 해 보자고. 달콤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조용하고 소박한 말투. 어째서 나는 저항하지 못하는 걸까.
쪼끄만한 꼬맹이가 살면 얼마나 살아봤다고 이런 말을 하겠냐만,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낀다. 여태껏 나는 나의 인생을 독점하며 살아왔었다. 인생의 주인은 나이며, 나 밖에 없으며, 나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내 주위의 모든 인물은 내 인생에서 조금씩의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나의 커다란 인생의 줄기는 변함이 없고, 그 어떠한 것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쩌면 내 인생 도면이 다른 사람에 의해 수정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달까나. 누군가를 피해서 다른 일을 시작하고, 누군가를 좇아서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것,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사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지갑 속 그 사람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눈이 온다며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시 우리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침묵하지만, 둘 다 알고 있다. 지금 그 사람과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은 안개 낀 벼랑의 구름다리를 건너는 일과 비슷하다는 걸. 항상 웃으며 다정하게 얘기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 보려고 한다.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말이다.
최근 생각이 많아졌다. 그 생각의 시발점은 학교를 물들인 노오란 은행잎. 너무나 늦게 찾아 온 가을 때문에 올해는 단풍을 볼 수 없을거란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머물러 주었던 따가운 가을 햇살덕에 학교에서나마 단풍을 맛볼 수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올려다 본 은행잎 속에서 1년 전 그 때의 단풍을 떠올렸다. 그 때에는 그 때 나름대로 빡빡하게 생활한다고 느꼈었는데, 단풍이 드는 것도, 가을이 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던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 순간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마냥 1년 전 그 상황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나의 눈 앞에 펼쳐졌다.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들이지만, 그 때는 얼마나 아파했던가. 그 때 저미던 가슴 왼켠의 시큰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 느낌이 1년 여 간의 추억들에 밀려 기억의 책장 저 뒤켠으로 밀려나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나는 간사한 인간이어라.
요즘 제일 많이 느끼는 건, 역시 팔자라는 게 존재할 거라는 확신이다. 그토록이나 벗어나고 싶어하던 인생의 패턴이 신기하리만치 반복이 되는 건, 팔자 탓이 아니고는 그 누구를 탓하랴.
최초의 이별 대상은 아버지. 4살의 꼬맹이는 인도네시아가 옆동네인 줄 알았고, 아빠는 출장가는 줄로만 알았다. 아니, 실감도 안났지만, 그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다른 날과 똑같이 아빠를 배웅했다. 엄마의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는지, 집안 공기는 왜 그렇게 삭막한지, 4살박이가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몇 번의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한 후 아이는 홀로 남겨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안고 자라났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지만, 어째서 그렇게 내가 필요한 사람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는지.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그 전에 벌써 마음의 정리부터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내 옆에 둘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럴 수 없는 사람과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요즈음 호감을 가지고 만나고 있던 사람이 원하던 곳에 취직을 했다. 옆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지켜 본 입장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두려움이 덜컥 밀려왔다. 아, 이 사람도 내 옆을 떠나려는구나. 이미 오래 전 부터 예상했던 시나리오이며, 따라서 대사 역시 정해져 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외울 수 있는 단 두 글자의 단어, 안녕. 그 단어만 말하고 나서 나는 내 곁에 있어 줄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할 기회는 너무나 많았다. 처음엔 컴퓨터를 보고 두 번 세 번씩 확인하는 그 남자의 모습에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두 번째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며 당당하게 얘기하는 그 사람의 모습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 날에는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잠이 든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고민을 하는 거냐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그 얼굴만 보면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사랑인거니?
모든 것을 털어놓은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나를 안심시킬 만한 아무런 확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부탁하고 요청했다. 한 번 해 보자고. 나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그 일들 하나씩 해 보자고. 달콤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조용하고 소박한 말투. 어째서 나는 저항하지 못하는 걸까.
쪼끄만한 꼬맹이가 살면 얼마나 살아봤다고 이런 말을 하겠냐만,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낀다. 여태껏 나는 나의 인생을 독점하며 살아왔었다. 인생의 주인은 나이며, 나 밖에 없으며, 나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내 주위의 모든 인물은 내 인생에서 조금씩의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나의 커다란 인생의 줄기는 변함이 없고, 그 어떠한 것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쩌면 내 인생 도면이 다른 사람에 의해 수정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달까나. 누군가를 피해서 다른 일을 시작하고, 누군가를 좇아서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것,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사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지갑 속 그 사람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눈이 온다며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시 우리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침묵하지만, 둘 다 알고 있다. 지금 그 사람과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은 안개 낀 벼랑의 구름다리를 건너는 일과 비슷하다는 걸. 항상 웃으며 다정하게 얘기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 보려고 한다.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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