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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또는 브레인스톰

죄를 짓다.

봄이야, 봄.
짙은 봄의 옷자락이 나를 덮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심장이 뛰어서.

오늘도 그런 날이었어.
과외를 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축 축 쳐저버리는 시험기간.
밤을 새도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인 디자인 과제.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
불투명한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근심, 걱정, 우려들.
이 모든 것을 순간 털어버리고 나비가 되어버렸어.
봄의 전령사, 나비 말이야.

나풀나풀.
눈도, 코도, 입도 막고 오로지 더듬이 끝의 촉각에만 의지해 찾아간 곳은
호상비문 앞 라일락 꽃나무 앞이었어.
어둑어둑 땅거미가 져 가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 져 가는 은은한 라일락 향기에
나는 분명 미쳐버렸던거야.

욕망에 사로잡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마음 한 켠에서 제발 그러지 말라는 내 이성의 소리를 분명히 들었거든.
그런데도 손이 가 버렸어.
꽃을 꺾었어.
죄를 지었어.
라일락 향기에 미쳐버려서 말이야.

왠지 모르게 기분이 너무 좋았어.
나는 왜 그렇게 혼자서 싱글거렸을까.
기어오르다 오군에게 쿠션으로 머리를 맞을 때도,
'빅토리아의 비밀'을 읽을 때도,
심지어는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그냥 기분이 좋았어.

봄의 마법이 깨어진 건, 시들어 초라해진 라일락 꽃을 보았을 때야.
내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던 거야.
개인적인 순간의 행복을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생명을 상처입혔어.
추해.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나 버렸어.
서로 상처주고 미워하는 인간이란 동물은 얼마나 추한 생물인가.
맞아. 인간은 추해.
그래도 난 인간을 사랑해.
어둠이 있다는 건, 빛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
빛과 그림자는 적이 아니야.
등을 맞대고 태어난 샴쌍둥이 형제이자, 평생을 함께 할 인생의 반려자야.
강한 어둠의 너머에는 강한 빛이 있을거야.

이런 말도,
지금 상황에선 범죄자의 한낱 핑계거리일 뿐이지.
정상참작해 주었으면 해.
하지만 말야, 다시 그러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그 당시 나는 미쳐 있었거든.
그러니 나는 처벌 대신 처방을 받아야 해.
달콤한 봄의 키스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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