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뭘 잘했다고 졸업장을 달라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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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매년 큰 일을 하나씩 치르고 넘어가는 것 같다. 2005년에는 이건희 회장 명예 철학 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가 크게 일어나질 않나, 작년엔 교수 감금되질 않나, 학생들이 출교 처분을 받질 않나...... 나처럼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그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좀 어안이 벙벙하다. 그리고 왜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지 뒤늦게서야 알아보곤
한다.(알아보지도 않고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나도 내가 알아보기 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말을 해 주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요즘 학교를 다니다 보니, 본관 앞이 더 지저분해 보인다. 출교자들이 농성중인 천막이 더 커진 것이다.예전에는
그냥 퍼런 천막 하나에 현수막 걸어놨는데, 요즘엔 정말 높은 흰색 천막이 두 개나 늘고, 옆에는 이상한 현수막을 세로로
세워놓았다. 이제 정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그 천막과 현수막을 보게 되는 것이다. 출교자 농성 1년이 넘었다.
무엇을 시작으로 보아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출교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4월 초에 있었던 교수 감금이다. 정릉에
있는 보건대가 본교와 통합하는 과정에서 1학년부터만 통합이 이루어지고, 2,3학년들은 보건전문대 학생으로 남는, 조금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리하여 2,3학년 학생들에게는 총학생회의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보건대 일부
2,3학년 학생들이 과격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본관을 점거하고 그 안에서 회의를 하던 교수님들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자신들의 요구안을 검토하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무려 17시간 동안.
이에 분개한 학교 측은 징계 위원회를 열어 주동자 7명에게 '출교' 처분을 내렸다. 출교된다는 것은 그 동안 학교를 다닌
모든 기록이 말소되어 원칙적으로 학교와 무관한 사람이 됨과 동시에 원칙적으로 재입학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마 학교가 학생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처벌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강경대책에 캠퍼스는 한동안 술렁거렸다. 자유게시판에 출교 처분에 대핸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보건대 선후배들이 캠퍼스에서 3보1배를 하고, 삭발 시위가 이어지고 본관 앞에 천막이 들어섰다. 출교자들의
농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일부 학생들은 그들의 현수막을 찢고, 이에 대항해 농성은 더욱 격해지고, 게시판에선 찬반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우선 그들을 고려대학교의 학생인가의 여부가 나는 조금 의문스럽다. 솔직히 내가 고대 학생임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들은
엘리제를 아는가', '그들은 사발식을 하는가', '그들은 4.18 마라톤을 뛰는가'나 '고연전에 참석하는가' 등이다. 만약
그들에게도 그런 학풍이 있다면 나는 그들을 같은 학교 학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일단 그들이 사발식을 한다고 가정을
하고,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데에는 찬성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안암 캠퍼스의 학생이 아니다. 그들은 정릉캠퍼스의
학생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만의 총학생회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서창 학생들이 사발식도 하고 고연전에 참여도 하지만
(서창 학우들은 엘리제를 부를 때 제일 높이 뛴다ㅋ) 그들은 그들만의 자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건대도 그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학교 측에서 조금 과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학생들이 사제간의 도를 어겼다고 학교 측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대응을 한 것처럼 좀 유치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측에서 손을 써서 언론 플레이를 잘 하는 것 같아 좀 거슬리기도 하고,
또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출교자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일이 이렇게 커지기 전까지 보건대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교수 감금 사태가 일어나고 나서 주위 친구들에게
보건대가 어디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다들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나는 보건대가 녹지운동장 즈음에 있는, 의대 건물 옆 구석탱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더랬다. 마치 처음 입학했을 때 우리 학교에 미술학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의
느낌이랄까(바보ㅡ,.ㅡ). 그런데 알고 보니 보건대는 정릉이라는 머나먼 곳에 있는 캠퍼스였다. 멀기도 하여라. 솔직히 그다지
우리 학교 학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캠퍼스 이야기는 차치하고서, 출교 처분을 받은 7명의 지난 발자취(?)를 살펴보면, 그들은 2004년 이건희 회장이
명에 철학 박사 학위 수여식 때에도 계란을 던지고 과격 시위를 한 인물들이다. 시위를 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다.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반론의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위가 어째서 폭력 사태로 이어져야 하며, 어째서 뉴스에서 좋지
않은 일로 학교의 이름을 듣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째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가 얼굴을 붉혀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솔직히 나는 이건희 회장이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 것에 쌍수를 들어 반기지는 않지만 반대하지 않는다. 그가
학교에 얼마나 돈을 기부했는지를 떠나, 그 정도의 큰 기업을 일으킨 인물이라면 '명예' 박사 학위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의 뒤에 얼마나 큰 비리가 더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빛이 밝으면 그림자는 더 짙은 법이다. 예수님도
그러셨지 않는가. 네가 떳떳하다면 돌을 던지라고. 폭력 시위를 한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단 한번도 거짓말일랑은 해 본적이
없는 것일까.
또 내가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교수 감금 이후에 그들의 뻔뻔한 태도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 어떠한
잘못을 했건,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대우를 했건, 교수를 감금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들은 감금하는 동안 최대한의 인간적인
대접을 해 드렸고, 그것을 거부한 것은 교수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그것은 감금이고, 감금은 대한민국
형법상으로도 중벌이 내려질 수 있는 범죄행위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는
'미안합니다'로 끝나는 것이다. '내가 잘못을 한 건 사실인데, 너네가 더 잘못 했잖아'는 사과가 아니라 비난이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꾸준히 과격한 시위를 벌여왔다. 징계위원회가 소집되었을 때도 그들은 밖에서 민중가요를 소리높여
불러댔다. 5월 5일 학교 개교 기념일 행사에서 침묵 시위만 하겠다더니, 결국엔 목소리를 내고 교우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권리를 찾기 위해 의무를 져버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 그들을 위해 3보1배를 하는 다른 교우들의 노력이 무의미하게 보인다. 사실 내가 보기에 일을
크게 만든 건 출교자들이다. 학교가 그들에게 출교 처분을 내린 건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따끔한 경고에 불과했다. 내가 알기로
출교는 교육부에 상정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라, 처음 그들에게 출교 처분을 내렸을 때는 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진 방침이었을
뿐, 아직 교육부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 만약 그 시점에서 그들이 그들의 잘못을 사과했으면 학교는 생색을 내면서라도 출교
처분을 철회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그들은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학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같아도 성질나서
그냥 교육부에 서류 올리겠다.ㅡ_ㅡ^
처음에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시각이, 1년여 동안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본관 앞 천막을 바라보며 서서히 괘씸함으로
바뀌어간다. 본관 앞 천막을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그들은 아직도 본관을 점거하고 있다. 그 천막 덕분에 본관
정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뒷문으로 다녀야 하며, 본관 앞에서 어떠한 행사도 할 수 없다. 아직도 틈틈이 농성이 벌어지고, 커다랗고
우중충한 텐트와 현수막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학교 외부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학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뒬는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나도 본관 앞에서 졸업사진 찍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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